넷플릭스에서 뭔가를 보고 싶긴한데 고르기가 너무 어려운가?
퀸스 갬빗은 최근 내가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스토리, 배우, 미장셴 등 여러가지 면에서 가장 완벽한 드라마였다. 나는 음악이든 영화든 뭐든 간에 여러 사람이 극찬하며 꼭 봐야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괜히 반항심리가 생겨서 안보는 이상한 습성이 있는데, 다행히 퀸스 갬빗은 포스터만 보고 끌려서 후기 따위 찾아보지도 않고 시작을 했기에 한참 화제가 되는 시점에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나같이 의심이 많거나 메이저 콘텐츠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대체 이 드라마가 뭐길래 요즘 이렇게 난리인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이 드라마를 봐야하는 이유를 5가지로 압축해 나열해 보려 한다. (더 많은데 쓰다보니 힘들어서 5가지만 쓰기로 했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끝까지 읽어보시고 볼지 말지를 정하시길.

1. 짧다.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이유. 끝까지 보는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짧다. 1개의 시즌, 7개의 에피소드, 총 393분으로 7시간이 채 안되는 길이다. 물론 영화에 비하면 길지만 드라마 미니시리즈 하나를 끝내려면 보통 16시간 정도는 소비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러닝타임이 짧은 만큼 스토리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다. 1화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뒤로 가면 갈수록 필요 없는 내용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체스를 몰라도 된다.
정말이다. 체스를 전혀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구성을 해놨다. 혹여나 보고 싶었는데 체스를 몰라서 시작하길 망설였던 분이라면 그냥 믿고 봐도 된다. 이 드라마는 체스 드라마가 아니라 어린 소녀의 아름다운 성장기를 지독할 정도로 시크하게 그려낸 잔혹성장드라마다.

체스를 아는 사람도 그 의미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관련 장면을 빠르게 넘겨버리면서도, 감각적인 아트비디오처럼 구성해놔서 보는 재미까지 더했다. 아주 훌륭한 연출이다.

그렇다고 또 체스 장면을 대충 만들지는 않았다. 그랜드 마스터 ‘게리 카스파로프’와 내셔널 마스터 ‘브루스 판돌피니’가 직접 체스판을 컨설팅해, 실제 체스를 잘 아는 사람도 매우 흥미롭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체스 초보라면 “체스 판 위에선 퀸이 가장 강력한 말이고, 킹을 죽이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는 것과 어떻게 해도 킹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체크메이트’라 한다는 정도만 알고 시작도록 하자. 이거면 충분하다.
3. ‘안야 테일러 조이’ 라는 배우의 재발견
어려서 받은 상처로 다소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이 짙은 소녀 ‘베스’ 역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
그녀는 냉소적인 어린아이 시절의 베스가 점차 성장해 어설픈 첫경험을 지나 관능미를 가진 만 22세의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가진, 어딘가 감정의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것 같은 그녀의 연기 덕분에 구성상 드라마가 약간 지루해지는 순간에도 잠시도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본래에는 오컬트 영화 ‘마녀’에서 시작해 다소 그로데스크하거나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들에만 출연했던 배우였는데, 이번 작품에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나를 사로잡았다.

4. 잘 반영된 시대상
1950년부터 1970년 사이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퀸스 갬빗은 여러가지 요소들로 시대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먼저 영상적으로 봤을 때 색보정을 과거일수록 세피아톤으로, 현재로 올수록 조금 더 쨍한 색감으로 맞춰서 시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과거임을 느끼며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또 여자들이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는 목표가 ‘멋지고 능력있는 남성’을 만나는 것에 포커스가 되어있는 것으로 그려진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보는 내내 정말 저 시대에는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작중 베스 뿐 아니라 베스의 친어머니, 양어머니 모두 상당히 비상한 사람들로 느껴지는데 결국 그들은 ‘좋은 남자’에 기대는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다. 베스는 과연 이 부분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드라마를 보실 분들을 위해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미리 한마디만 하자면 결코 흔한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내용을 풀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관계로 인해 서로 체스로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는데, 유치하면서도 참 재미있는 부분이니 놓치지 마시길.
5. 화려한 의상

이 역시 화려한 의상들을 소화해낸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배우가 가진 힘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굳이 따로 뺀 이유는 의상이 정말로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초반 보육원에서 지내던 시절 독실한 청교도인 스타일의 ‘이보다 더 수수할 수 없어’ 룩에서부터 짧은 단발과 플레어 스커트의 50년대 스타일, 나아가 60년대 패션 스타일을 철저하게 고증하며 스타일링된 그녀의 패션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얼마나 패션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넷플릭스는 이 의상들을 브루클린 박물관과 협업해 온라인 전시를 진행 중이다.

더퀸앤더크라운(https://www.thequeenandthecrown.com/)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각 의상의 클립과 설명과 함께 360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들어가서 보도록 하자. (12월 13일까지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치며..
다소 소시오패스처럼 보일 정도로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체스’만을 맹목적을 좇으며 달려가는 아이, 베스.
극 초반에는 정말로 소시오패스 아이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일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봤다. 그러나 극 중반을 지나고나니 그런 모습은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아이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었더라.
당연하지만 세계 최고의 체스기사가 되어도 지나간 시간은 다시 붙잡지 못한다. 과연 베스는 잃어버린 것들을 뒤로 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며 확고하게 자기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지, 드라마에서 속에서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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