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와 나르 그리고 집사

두 고양이와 집사의 일상 이야기 블로그

잡다한 얘기

보고를 위한 보고서에 대처하는 방법

조로나르 2023. 10. 13. 09:32

군대는 온갖 인간 군상을 모아놓은 집단이다.
덕분에 어느정도 사회생활의 간접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회사에서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여러차례 만들다보니 문득 
군시절 경험한 총기수입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작은일로 치부하자면 작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인생을 살아온 방법에 대해서 돌이켜보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 이었기에 적어본다.


 

군대에서 출세나 승진에 목을 메는 간부가 당직인 날 병사들은 괴롭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승진걱정이 너무 큰 나머지
병사들에게 마땅히 쉼이 보장돼야 할 시간조차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떻게든 쉬는 대신 다른 잡무를 시키곤 하는데,
대표적인 걸로 치약미싱, 필요횟수 이상의 총기수입, 전투화 광내기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업무의 애매한점은 적정량만 한다는 전제하에는 필요한 업무라는 점이다.

그날은 해가 화창한 맑은 날이었는데, 한 시간 동안 총기수입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총기수입은 사용한 총 안의 화약 찌꺼기를 깨끗이 닦아내 잘 작동하도록 하는 작업인데,
사격 훈련 때문에 닦은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전 부대원의 총이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할 필요가 없는 상태)

깨끗한 총 안쪽을 기름 묻힌 솜으로 닦아내며 투덜대고 있던 중,
맞후임이 갑자기 기름을 총 겉면의 플라스틱과 포신에 발라 반들반들하게 닦아내는 것이 아닌가?

본디 겉에 바르는 용도가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먼지가 들러 붙고 손도 끈끈해질게 뻔해서,
우리 모두는 의아해하며 말렸지만 후임 녀석은 두고보라며
중요한 총 안쪽은 전혀 닦지 않고 외면의 광(?)을 내는데만 치중했다.

정석대로 열심히 총을 닦은 사람들은 한 시간에 걸쳐 끙끙대며 먼지도 없는 총기 내부를 다시 닦아냈고, 
그 후임은 5분만에 광을 다 내고 드러누워서 잡지를 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총기 검사가 시작됐고, 

간부는 일렬로 놓여있는 총들을 살펴보다가 아니나 다를까 
기름이 떡칠돼서 반짝반짝 빛나는 그 후임의 총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총을 이리저리 살펴본 간부가 말했다.

"이걸 봐라. 얼마나 잘 닦았냐. 다들 이 후임처럼 닦아야한다. 이 총주인 빼고 나머지 다 다시 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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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내가 불필요한 업무지시도 많이 받게 되고, 
여러 상황에 의해 비슷한일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럴때는 총 겉면에 기름칠을 하는 요령도 필요하다..

가령, 반복되는 보고서는 비슷한 내용이지만 사진을 좀 추가한다거나, 
레이아웃과 폰트만 바꿔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용이 별거 없어도 그럴듯하게 예쁘게만 만들어서 제출한 PPT는 대체로 싫은소리는 안듣는다.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 맞는 '광만 내기' 기술을 터득해서
업무시간에는 더 핵심적인 일에 집중력을 사용하고,
퇴근도 일찍해서 고양이들에게 빗질한번 더 해주고 이런 뻘글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